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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시노 쿠라이시, "산수-최종지점", 2011 / 倉石信乃, "山水、最終地点", 2011
DATE : 11/21/2011 01:25

BOOMOON SANSU, Yokohama Civic Art Gallery-Azamino, 2011

 

 

산수, 최종 지점

-시노 쿠라이시 (메이지 대학 사진사 교수)

 

자연의 한 끝에 닿아 있다. 이 때, 나는 자연 외부에 관찰자로 서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안쪽에, 그 작은 부분을 이루는 하찮지만 명백한 정식 구성원으로 자연 속에 감싸여 있다. 그런 인식을 가질 때 비로소 자연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비록 가까운 마을 산을 산책하거나 완전히 관광지가 되어버린 산과 바다에서 노니는 것도 결코 경시할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철저히 비자연화하고 있는 오늘날의 생활을 반성하는 작은 도전 같은 것이다.

 

우리를 포함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감동을 단어와 그림, 소리로 바꾸어 표현하는 오래된 행위는 의미 있는 것이기는 하나 솔직히 말해 신뢰할 수 없다. 불신의 이유는 자연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해온 근대 이후의 사회 시스템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원래 그런 시스템과 엄격하게 대치해야 하는 예술 작법에서 ì¡°ì°¨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의 장소를 인간 관계에서 분리하여 보호 영역에 격리하여 온 경위가 있다. "자연 ê·¸ 자체"는 오랫동안 우리의 진지한 예술 토론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온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여전히 단순한 외형이 아닌 주제로 다루고 있는 사진에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사진사에서 자연 이미지는 자연과 문명의 중간 영역을 탐구하여 후자를 비판하는 모티프를 명시 또는 암시하는 것을 거의 결정적으로 의미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동서양을 불문하고 일부 급진적인 사진가들과 사진 매체를 이용하는 아티스트 중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 ê·¸ 자체"와 재차 싸워보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물론 공공연한 가식이나 상업적 거래의 구실이 되어버린 “친환경”이라는 것이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빈번하게 목격한다. 지금 우리는 자연을 작품의 주제로 즐겨 다루는 작가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친환경적 의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분별할 필요가 있다.
권부문은 1980 년대부터 현재까지 바다, 하늘, 사막, 또는 산천 초목의 간결한 풍경을 확신을 가지고 작업해왔다. 그는 "자연 자체"와 마주하려는 경향에서 선구적인 사진 작가 중 한 사람이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최근의 시리즈인 겨울 산을 보여주는 "산수"와 겨울 바다를 보여주는 "낙산"에서 그는 애용하는 핫셀블라드 카메라에 디지털 백 “페이즈 원”을 장착하여 정밀하고 놀라운 묘사력과 대형 화면을 실현하였다.

 

권부문의 “산수”가 새로운 차원의 표현에 발을 내딛고 있음은 예를 들어, 작은 나뭇가지 위에 부드럽게 내려 쌓인 눈이 치밀하게 묘사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극미의 디테일은 산 전체의 육중한 자태와 공명하면서 "산수" 즉 자연 풍경 자체와의 만남을 확실하게 조직하고 있다. 물론 사진 작가의 "태도"가 확고하기에 우리 관객들이 그런 만남을 공유하도록 촉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지가 요구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자세가 된다. 장소의 조건들이 대상을 잘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하여 이미지로 기록하는 것은 우연 같지만, 이미지는 내 앞에 펼쳐진 세계와 관계 맺는 가운데 얻어지는 총체적인 경험의 결론이다. 어떤 대상을 물리적, 정신적 차원에서 만나는 일이 일순간 한 장의 이미지로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늘 놀란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특정 상황의 선택이고 결론이다.”*

 

함축적인 해석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셔터를 누른다는 사진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주체와 객체의 대립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진가 파악한 것, 또는 사진에 찍힌 것은 물질 세계의 모습도 아니고, 정신 세계의 구현도 아니다. 그대신 여러 세계가 겹쳐진 것, 즉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만남의 최종 지점, "결론"이 사진인 것이다. "이미지"의 원형은 이러한 상즉 (相卽)**의 찰나에만 빛을 받아 출현하는 것이다.

자연의 간명하고 순수한 원형에 도달하려는 작가의 의지는 최신 디지털 기술의 요긴한 지원을 받아 이미지들이 낳는다. 마술적인 해상도를 보여주는 21 세기의 “산수화”는 "사실과 이상"의 새로운 조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번역: 오소자)

 

주>

*작가의 말은 학고재 갤러리 개인전 <권부문-산수와 낙산> 카탈로그 중 김애령의 서문에서 재인용.

역주>

** 상즉(相卽)은 화엄사상에서 만물이 그 진제에 있어 융합된 하나임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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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水、最終地点

 

倉石信乃

 

 自然の一端にふれる。そのとき私は自然の外側に客分の観察者として立っているのではない。自然の内側に、そのごく一部を成す些末ではあっても紛れもない正式のメンバーとしてつつみ込まれている。そのような認識のおとずれが、すなわち自然を理解することのきっかけになる。そうであるから、たとえありふれた近くの里山をそぞろ歩いたり、すっかり観光地化された海山に遊ぶことも、けっしてあなどるべき振舞いではない。それらはきっと、すっかり非自然化してある今の生活を省みるためのささやかな挑戦なのだ。

 しかしわれわれを包含している自然への気づきや感動を、言葉に、絵に、また音に換えて表すという古来からの営みが、ちゃんと意味あるものたりえているかといえば、真に心許ない。その心許なさのわけは、自然のことごとくを利用可能な対象と見なしてきた近代以降の社会の仕組みにあるばかりではない。本来そのような仕組みと厳しく対峙し問いただすべき芸術の作法においても、すでにずいぶん以前から、自然の居場所を人為の関わりから分離した上で、それを保護領域に隔離してきた経緯がある。「自然そのもの」は長い間、われわれのシリアスな芸術思考の俎上から実質的に排除されてきたのである。このことは、自然を依然として形骸化に陥ることなく主題化してきた写真というジャンルについても同断であった。この四半世紀ほどの間、写真史における自然表象とは、自然と文明の中間的な領域を探究することで、後者を批判するモティーフを明示し、あるいは暗示するものを、ほぼ限定的に意味してきたとさえ言ってよい。

 ところが、この10年ほどの間、洋の東西を問わず一部の先鋭的な写真家あるいは写真を媒材に用いたアーティストの中で、より積極的に「自然そのもの」と改めて格闘しようとする傾向が顕著になってきた。むろんそこにこだましているのは、風俗的な装いや商行為の口実と化した「エコロジ−」であることも少なくない。いまわれわれには、自然を好んで主題に据える、アーティストばかりではない数多くの者たちの意図を、注意深く見極め、選り分けていくことが求められている。

 ブムンは、1980年代から今日に至るまで、海、空、砂漠、あるいは山川草木の簡潔な風景を、確信を持って描出してきた。彼は、「自然そのもの」と向き合う動向においては、そのさきがけに位置する写真家の一人であり、われわれに多くの示唆を与えている。近年の二つの連作、冬山に取材した「山水」と冬の海を描いた「洛山」では、愛用のハッセルブラッドにディジタル・カメラパック「フェーズ・ワン」を装着することで、精緻極まりない驚異の細密描写と、著しい画面の拡大を実現している。

 ブムンの「山水」が際立って新次元の表現に踏み込んでいると気づくのは、例えば極細の木の枝にわずかに薄く降り積もった新雪が、実にきめ細かく映し出されるところだ。そうしたミクロの成分の析出は、山塊の大柄な把握ぶりと共鳴しあいながら、われわれ観る者に「山水」すなわち自然の風景そのものとの出会いを確かに組織している。こうした遭遇はもちろん、まずは写真家の「態度」が決することによってはじめて、われわれに分有をうながしているのである。この成り立ちについてブムンは次のように証言している。

 

《私が野外にいるとき、イメージそれ自体が私の待機している瞬間を決定する。待つことは遭遇の一部を成しているのだ。すべてのエレメントが撮影される対象を明らかにするために協働するなんて、ただの幸運に過ぎないと見なされるだろう。しかしイメージとは実際、眼前にある世界と私の関係をめぐる複雑な経験における、最終地点なのだ。物質的かつ精神的な複数の世界間で起こる遭遇のはかない一瞬のなかで、イメージを獲得することができる。そのことに私はつねに驚嘆する。最後にシャッターを開放した瞬間が、その状況の結論なのだ。》(注)

 

含蓄ある自注というべきである。ここにはシャッターをリリースするという、写真の基本的なメカニズムが、主客の対立を実践的に調停し止揚することに役立つ模様が実況されている。写真家が捉えるもの、あるいは写真に捉えられているものは、物質世界の似姿でもなく、精神世界の具現化でもない。そうではなく、複数世界として重ね描きされるもの、すなわち物質と精神の間に生じる一瞬の出会いにおける「結論」、最終地点が写真だ。「イメージ」の原形は、こうした相即の刹那においてのみ明るみに出るのである。

 極めて簡明な、純粋な自然の原形へ遡行的にたどり着こうとする精神が、最新のディジタル・テクノロジーを重要な支点として、イメージを産出する。魔術的なまでの解像力が露わにする21世紀の「山水画」は、「写実と理想」の新たな調和を企図しているのである。

 

(注) ブムンの言葉は以下に収録。Kim Airyung, "Foreword", Boomoon: Sansu & Naksan (Seoul: Hakgojae Geller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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