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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김승현, “무심한 폭로의 시선”, 1997
DATE : 08/22/2011 22:55

가나아트 1997년 1-2월호

 

전시장 리포트 : 권부문 사진전, 전갤러리,  1996.11.15 - 12.10


무심한 폭로의 시선

이때부터 우리들의 야비한 사회는 나르시스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한 조각의 금속에 찍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이상한 광기가 사람들에게 들러붙었던 것이다. -보들레르-

방으로 날아든 큼직한 초대엽서를 보고 ‘괜찮은 풍경화전 하나가 열리는구나’ 했다. 잔잔한 붓놀림으로 이루어진 듯 퇴색한 야산과 높은 하늘의 이미지뿐인 그 엽서는 그만큼 말쑥하게 정돈된 유화의 느낌이었다. 그것은 권부문의 사진이었다. 엽서 어디에도 그것이 사진이라 일러주는 친절은 없었는데, 뒷면에 적힌 ‘인화’, ‘후지크롬’ 등의 깨알 같고 소극적인 단어로 뒤늦게 눈치챘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건 회화주의(Pictorialism) 망령의 복고인가. 의문은 잠시 유보한다 하더라도, 이미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화랑에 사진 걸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귀하고 귀한 것이 화랑의 사진전이다 보니 편견은 생길 법도 했다. 여하간 화랑에서 사진을 환대한다는 사실이  내심 반갑고, 화랑에서 환대하는 사진이 궁금하기도 해서 갤러리 측에 팸플릿을 원한다고 전화했다.
팸플릿을 보면서 그것이 사진임을, 더구나 현상과 인화의 과정 말고는 손댄 적 없는 ‘스트레이트한’ 사진임을 재삼 확인했지만 엽서를 대할 때와는 다른 감상이었다. 겨우 엽서 한 조각을 보았을 때의 필자는 ‘별것 아닌 산에다 잘도 들이댔구나’, ‘묘한 느낌을 주는구나’ 하는 식의, 아름다움의 수사만 늘어놓는 요설가였다.
그러나 펼쳐진 팸플릿 속에서 막상 나타난 엽서 속 이미지는 여러 장의 엇비슷한 시퀀스 안에서 별다른 개성도, 주제도 부여받지 못한 채 서울의 김 씨처럼 들어앉아 있었다. 더구나 <파지르 밀림>과 <브로큰 힐 사막> 등의 시퀀스는 필자 스스로 걸어놓은 서정성에 대한 최면을 번쩍 깨우기에 충분하였다. 서정성은 그만두고라도, 팸플릿 겉면에 전시명이라도 멋있게 걸렸다거나 한 군데 풍경을 그렇게 여러 번 보여주지만 않았어도 권부문의 사진이 오지(奧地)에 관한 땀내 나는 다큐멘터리라고 결론을 짓고 만족스럽게 팸플릿을 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그의 사진들 앞에서 필자는 알쏭달쏭한 유구무언의 국외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진

청담동을 찾았다. 마지막 골목을 들어서자 전갤러리가 쏟아내는 할로겐 빛이 있었고, 그 빛을 등대 삼아 걸었다. 눈에 들어온 작은 갤러리는 입구 측 벽면이 온통 유리로 훤한데다가 군더더기 없는 장방체의 공간이어어서, 마치 관객, 작품, 작가와 직원이 등장하는 무언극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날도 다름없이 객석 없는 그 극장은 골목의 어둠을 향해 오롯이 공연하고 있었다. 전시장은 두부 한 모를 떠놓은 듯 반듯한 여섯 면으로 마감되어 그림자 지는 곳이라고는 없었고, 흰 벽은 날것의 냄새가 날 듯한 새물이었다. 숨을 구석 없는 정직한 공간에 들어서는 기분이란 과연 객석에서 무대 위로 올라설 때의 그런 것이었다. 구두 굽에 따라 움직이는 실내의 시선을 즐기며 나란히 걸린 권부문의 사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작품까지 정직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사진은 모두 컬러사진이었으며, 크게 다섯 가지 작업으로 나뉘었다. 인도네시아 열대림의 벌목 현장을 담은 풍경 <파지르 밀림>,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하는지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브로큰 힐 사막>, 검붉은 겨울산 <산Ⅰ><산Ⅱ>, 뭉텅 베어나간 황토빛의 산자락 <산Ⅲ>이다. 모두 시퀀스 작업으로서 넉 점에서 많게는 열여섯 점에 이르는 것이었다. <산Ⅰ><산Ⅱ><산Ⅲ>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스쳐지나가는 산들을 속사(速寫)한 사진들이고, <파지르 밀림><브로큰 힐 사막>은 다가서거나 물러나며 찍은 밀림과 사막의 즉흥적인 사진들이다. 거기에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시퀀스로 다스려주는 일정한 주제나 긴장감이 있지 않았으며, 시간의 차이와 공간의 이동이 별로 없는 비슷비슷한 프레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찍지 않은’ 사진들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게다가 소형 사진기가 그렇듯이 해상력은 그리 좋지 않아서 작품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구경하는 시간이라곤 액자 앞을 걸어 지나가는 시간으로 족해서, 일분 남짓한 시간에 전시는 다 볼 수 있었고, 기존의 사진들이 들려주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되새길 필요도 없었다. 결국 전시장을 향하며 기대했던 일말의 아무라마저 맛보지 못한 채 대사 끝난 단역처럼 어색하게 두리번거렸다. 작품이 자신의 사고틀 밖에 위치할 때 입은 그렇게 과묵해지기 마련이다.
권부문을 만났을 때 그는 필자의 당혹스러운 체험을 예상한 듯이 이야기했다. 그 맹아부터 사진은 자신의 존재이유가 현실과의 극적인 만남 이상이 아니라 여겨왔고, 그러한 생각은 결국 사진가를 소재(素材)의 사냥꾼으로, 사진사(寫眞史)를 사회사(社會史)의 시녀로 자승자박해왔다는 것으로, 그 자신은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다고 했다. 더구나 이미 가르치고 배울 단계를 넘어선 현대인의 잣대 앞에서 사진가는 더 이상 현실의 결자(結者)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립과 객관을 표방하면서 현실과의 극적인 만남을 주도한 순수사진이 흔히 드러낸 오류는 그것이 걸작일수록 현실에서 멀어져갔다는 점이다. 극적인 사진이란 것이 대개 사진만의 시각에 의존했던 까닭이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느낀 당혹스러움이란 일차적으로 극적 요소가 자취를 감춘 데서 오는 것이었다.

사진은 폭로할 수 있는가

창작과 감상을 위해 마련되어 있던 단단하고도 낡은 예술의 가설들 속에서, 사진은 곧 실재(實在)였다. 우리는 그것을 믿었고, 믿는 대로 보아왔다. 이렇듯 회화로부터 약탈해온 현실 재현의 역할을 독점하면서 승승장구하고, 마침내 예술의 범주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던 사진은 신뢰의 바탕이 되었던 메커니즘의 중립성이 부도나는 바람에 백 년이 넘도록 찬탈해왔던 ‘진실의 권좌’에서 나앉게 된 터이다. 부도를 인정한 작가들이 선택한 비상구는 중립성 혹은 객관성의 포기였다. 이들은 사진을 내밀하고 사적인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적극적인 창작의 재료로 활용하였다. 요컨대 빛에 반응하는 감광유제의 순진무구함을 사진의 중립으로만 알았던 것이 승승장구의 사진이라면, 중립성에 미련을 두지 말고 하고픈 말을 하자는 입장이 부도 이후의 사진이다. 사진의 소명에 대한 이해는 이렇듯 양극을 달리면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두 입장이 손을 잡는 분명한 지점이 있다. 전자는 부지불식간에, 후자는 의도적으로, 모두가 자기주장을 위해 애써왔다는 점이다. 세상을 거짓 없이 보여주려던 사진의 발명 동기가 존중받았던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가 대상에 대한 다른 방식의 집착으로 귀결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또 하나의 자기주장을 낳고 만 것이다.
프레임 안에 대상을 가두고, 많은 커트 중에서 ‘물건’을 고르는 와중에 우리의 의지는 슬며시 끼어든다. 의지의 개입과 사진의 중립성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이율배반이다. 중매쟁이한테 넘길 반명함판 사진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노처녀의 사연은 무엇인가. 그는 잘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자신을 아름답고, 품위 있는 여성으로 비추어줄 것을 믿는다. 결국 중매쟁이가 꺼낸 사진을 들여다보는 노총각은 아니나 다를까 사진의 주인공을 실재라고 믿으면서 실재보다 부풀리고 만다. 도박을 즐기고, 주벽이 심할지도 모르는 그 여성의 ‘생활’은 증명사진에서 잠시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여성의 사진 밖 모습을 상상해보기는 하겠지만, 차라도 한잔하기 전까지 노총각은 그 교조적 이미지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알고도 속는 셈이다. 틀에 박힌 듯 찍혀 나오는 증명사진조차도 이렇듯 실재의 왜곡일 수밖에 없는 것은 증명사진이란 최상의 환영(幻影)이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뚜렷하고 관행화한 의지가 그 작은 사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지가 관철되는 한 노처녀 역시 노총각의 환영에 곧 속아 넘어갈 것은 자명하다. 그 과정이 공공연함에도 불구하고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이 기만의 우화(寓話)야말로 사진에 작동하는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주는 비근한 예이다. 권부문은 의지의 개입을 막음으로써 부도난 중립성의 신용을 만회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은 무심한 시선의 흐름에 의해 선택된다. 이 과정에 순간 포착의 묘미나 구성적 완성에 대한 관심은 오간 데 없으며 의지는 억제된다.
“회화는 구축하고 사진은 폭로한다.” 손탁(S. Sontag)이 회화와 사진 간의 상반하는 매체적 특성을 일컬은 말이다. 그가 폭로성을 사진의 벗어날 수 없는 본질이라 여겼다면, 이는 필자의 생각과 다르다. 실제로 사진은 그 본령인 진리의 폭로보다 진리라 여기는 바의 구축이나 거짓의 구축을 위해 한참을 봉사해왔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진은 구축에 몰두해 있다. (흑백사진의 끈질긴 생명력은 그 단적인 예다. 흑백사진이 인쇄술과 컬러사진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배후에는 비현실의 장을 공고히 다져 주리라는 흑백사진에 대한 신뢰가 숨어 있다.) 이제 권부문을 말하기 위해서 손탁이 내린 정의를 수정해야 한다. “사진은 구축하고, 권부문의 사진은 폭로한다.” 이른바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의 모토이기도 한 진정한 의미의 폭로야말로 정보의 중립을 구가하는 권부문 사진의 핵이 되는 것이다.

권력에서 자유로

권부문은 지금까지 온갖 피사체 위에서 군림해온 권력의 붕괴를 기도한다. 이를 위해 재현이라는 사진 본연의 숙명은 따르되 대상을 향한 집착은 거두어들인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붕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듯이 세상을 보라고 한다. 바늘 없이 낚시를 하라고 한다. 그는 사진 속에서 소우주가 탄생하기를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권부문의 엽서에서 잘 가꾸어진 회화적 사진을 보았던 것은, 시퀀스를 벗어난 한 장의 사진이 지닌 오독(誤讀)의 여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항상 무언가 쥐어주던 사진의 문법에 길들여진 탓이 더 크다.
권부문의 무심한 사진은 설명하거나 웅변하려 들지 않고 심드렁하게 있다. 그는 유사한 시점을 지닌 여러 장의 사진을 늘어놓는 방법으로 보는 이의 관심이, 일정한 사진, 혹은 일정한 대상에 맺히는 것마저 차단하고 있다.
그의 태도는 의욕상실이나 허무주의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로부터 멀리 떨어진 새로운 땅에 사진사(寫眞史)가 쌓아왔던 자기주장과 왜곡의 성(城)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달음질치는 자의 뒷모습이다. 달음질을 친다고 사진이 실재의 등가물로 둔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행로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우리의 시선을 성벽 너머로 데리고 감으로써 곡해했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가 아직도 많이 있음을 일깨워준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찍지 않는’ 태도는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사진은 고매한 정신인 척하지도 않고 선악미추(善惡美醜)를 가르는 일체의 판단도 미룬 채, 작은 갤러리에서 말없이 폭로하는 중이었다.

 

김승현(서남미술전시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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