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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김보령, “자기 앞의 생에 마주서다 - 속초의 산과 바다 찍은 권부문”-인터뷰, 2011
DATE : 08/23/2011 03:00

<월간사진> 2011년 3월호

 

자기 앞의 생에 마주서다  

속초의 산과 바다 찍은 권부문 

 

말하는 사진과 말하게끔 만드는 사진이 있다. 권부문이 찍은 속초의 산은 상상 속의 이상향을 그린 진경산수에 반해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실경산수화를 닮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사진에는 어떤 주장도 의미도 들어있지 않다. 그저 오랫동안 쳐다보게 만들며 각자가 가진 삶의 깜냥만큼 느낀 감정을 말하게 만들 뿐이다.

 

권부문의 초기 작업은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서 찍은 거리 풍경들로, 암담한 일상과 미지의 불안, 아이러니를 담은 거칠고 어두운 사진들이었다. 그는 1970년대 근대화 속에 변화하는 도시풍경과 사라지는 시골마을, 특히 안동 수몰지구와 하회마을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시대와 장소의 특수성과 무관한 풍경을 통해 인식과 사유를 중시하는 ‘태도로서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바다와 사막의 수평선, 밤하늘과 구름, 큰 돌과 폭포, 북극의 얼음 등 권부문이 마주친 세계는 모두 사진에 담겼다. 90년대 후반에는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시베리아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 노르웨이 북부에 이르는 여행을 떠났다. ‘말과 의미가 무색해지는 삭풍과 동토’를 만나는 여행을 통해 궁극의 시각을 체험한 그는 2008년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풍경을 찍은 ‘북풍경’을 선보였다.

권부문의 사진에는 어떤 수식이나 정보도 없다. 단지 ‘그 사물이 거기에 존재했다’라는 지시성만을 가질 뿐이다. 그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이야기가 없는 사진을 자기 성찰의 도구로 삼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의 한 가운데서 마주친 세계를 찍은 사진을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으로 간주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해했는지 아는 척도로 삼은 것이다.

현재 삶의 터전이자 영감의 원천인 속초에서 작업 중인 권부문은 최근 산과 바다를 찍은 사진으로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산수와 낙산’ 전시를 열었다. 널찍한 벽면 가득히 걸린 속초의 산은 눈 덮인 첩첩산중의 적막함을, 차가운 겨울바다는 눈발 날리는 동해바다의 야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시장 앞에서 그를 만났다.

 

인생 굽이굽이마다 마주친 풍경

 

지금도 속초에 있는가?

그렇다. 2000년 12월 처음 속초에 들어갔는데, 지난 십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가 항상 돌아와 쉬어가는 인생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어디를 가든 속초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그곳이 내게 주는 힘은 굉장하다. 그래서 늘 속초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곤 한다. 큰 산과 찬 바다가 있는 북쪽의 속초는 그 자체로 엄청난 기운이 넘치고 늘 변화무쌍하다. 어떤 사람은 그런 기운으로 인해 자신의 에너지를 치명적으로 고갈시키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에 맞서 싸우며 대단한 근육을 만들며 좋은 작업을 하기도 한다.

 

초기 작업은 길과 사람, 근대화 등 다소 사회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를 강렬하게 표현했지만, 최근작으로 올수록 나무와 구름, 돌 등 편안한 자연의 풍경이 주를 이룬다.

어떤 특별한 시점에 주제가 달라지는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변해왔던 것 같다. 사진가의 삶을 따라 그가 보는 풍경도 달라졌을 뿐이다. 사람이 젊고 피가 끓을 때는 자기와 접점을 이루는 세상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해와 입장에 대한 예민한 촉각을 가지게 되는 이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사회적 의문을 격렬하게 표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사진 속에도 지금처럼 어떠한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이 없었다. 단지 대상과 거리를 두며 방관자처럼 바라볼 뿐이다. 그런 ‘거리두기’는 어떤 현실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내 나름대로의 입장이다. 사람에 대한 감정이 유독 많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 찍지 않는다고 해서 그 관심이 덜해진 것은 아니다. 단지 용도에 맞게 요리를 해서 먹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내 사진의 대상이 꼭 자연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변하는 내 삶 앞에 다가선 세계에 반응할 뿐이고, 그에 대한 이해가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마치 성장통처럼 그런 과정을 치러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월이 마치 분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성숙도가 마치 하나의 그래프처럼 계속해서 이어져온 것 같다.

 

인생의 궤적을 따라 사진도 변해왔다. 사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 것을 내가 가진 상상력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사진적 태도가 있다. 하나는 사진의 소재를 통해 주제를 찾는 것인데, 끊임없이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스스로를 돌아보는 도구로 삼는 쪽이다. 나는 후자인 것 같다. 사진은 내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고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시각적 결과물이다. 그래서 항상 내 자신을 고양시켜야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내 입장이 작품 속에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에게 ‘사진적 태도’라는 것은 사진 결과물 자체만큼이나 그 사진 속에 드러난 내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사유로서의 사진’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한 예술가가 어떤 이미지를 훌륭하게 잘 만들 만한 시점이 되면 나이가 들어 죽어야 했다.(웃음) 또한 획득된 이미지를 통해 성찰을 이루기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지를 통한 사유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달로 하루에도 얼마든지 이미지를 생산하고 대면하고 복제하고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단순히 소재만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보다는 대상을 마주하고 사유하는 나만의 사진방식이 오늘날의 시대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북유럽 등을 여행했다. 일상적 풍경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면서 어떤 시각적 변화를 느꼈는가?

어떤 여행이나 동기가 중요하다. 내 여행의 경우 스스로를 고양시키고 낯선 상황에 스스로를 던져놓기 위한 목적이 컸다. 여행은 익숙해진 것에서 멀어져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낀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로선 시각적인 변화보다는 마음의 변화가 더 컸다. 그리고 결국 여행에서 만난 대상에 대한 나의 입장이 사진적으로 표현되었다. 한마디로 여행의 풍경이 나를 고양시킨다.

북쪽을 향했던 이유도 있다. 18세기 유럽의 화가들은 자신이 대면한 시각적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스펙터클한 풍경이 펼쳐지는 북극을 찾곤 했다. 그곳에는 어떤 장소의 풍경도 따라올 수 없는 ‘절대풍경’이 있다. 어떤 의미 있던 풍경조차 의미 없게 만드는 절대적인 풍경에 대한 시각적 갈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익숙한 도회지나 삶이 배인 일상적 공간, 정치, 사회적인 풍경 등 모든 종류의 풍경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각에 대한 갈망이 내게도 있었다. 북극뿐 아니라 사막을 찾았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모든 의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대풍경을 찾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긴 여행도 2주를 안 넘기려 했다. 더 넘어가면 모험이 되므로 감정선이 무너진다. 여행 중에도 감정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사진에서는 풍경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 어떻게 드러나 보이길 바라는가?

나와 같은 시각적 갈망이 있다면 아마도 누구나 내가 획득한 이미지 앞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경험과 삶의 내력이 있으므로 받아들이는 입장도 다 다를 것이다. 내 작업에는 메시지가 없다. 간혹 화면 속 정보를 통해 보는 이의 감정을 통합하려는 욕망을 가진 사진도 보이지만, 내 사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길 원한다. 사람의 감정은 날씨와 같아 고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앞에 선 감정은 인위적으로 이끌 수 없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감정을 가르쳐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내 작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젖어들고 감정이 스미거나 배어나오게 하고 싶다. 그리고 감정들 간의 관계를 열어놓으려 한다. 단지 작품을 스스로 해석할 줄 아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특별석을 마련할 뿐이다.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전시장의 위치 때문에 지나던 등산객들이 자주 방문한다. ‘어, 아까 우리가 봤던 산이랑 비슷한데’라는 의외로 재밌는 반응을 보이며 작품에 스며드는 관객이 있었다. 또 간혹 연인이 방문하면 한참 동안 말없이 사진 앞에 머물다 가곤 했다. 그럴 땐 내 사진이 그들의 사랑에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웃음) 내 작업 앞에선 유독 하염없이 서있는 사람이 많다.

 

눈 내리는 속초의 산과 바다

 

‘산수’ 작업은 간혹 익숙한 구도와 운무 등 조형요소 때문에 전통산수화에 비교되곤 한다. 

물론 전통산수화의 정신은 이어받아야 마땅하지만 처음부터 전통산수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전통산수의 중요한 핵심을 이해하고 좋은 계승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오늘날엔 기술이 발달하고 매체가 다양해졌을 뿐이지 정신사적으로는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사람이 한 순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경험의 이해력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했는데 잘 칠만하니 졸업이더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발달하고 예술의 도구는 더 세련되어졌지만 오늘날의 현대예술이 전통산수화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가령 스마트폰을 못 가졌다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가진 성찰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전통산수를 그렸던 분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사에 빚지고 있다.

 

주연이 산과 바다라면, 조연은 눈인 것 같다. 왜 눈인가?

눈은 상황을 급격히 돌변시킨다. 어떤 물리적인 방법이나 감정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거나 한 순간에 표백시키는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감정을 수십 배로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자연현상인 눈이 가진 기능과 요소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진가들에겐 정말 매력적인 대상이기도 하다. 눈이라는 현상은 현장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진행을 보여준다. ‘눈이 온다’라고 하는 진행형의 상황은 어차피 과거의 것일 수밖에 없는 사진의 숙명을 벗어나 사진에 현장성과 진행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내 사진은 어떤 상황을 변화시키고 진행시키는 눈을 통해 바로 그 변하는 찰나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눈 때문인지 전시장에 걸린 ‘낙산’ 작업은 각각 분절되면서도 하나로 이어진 영화 프레임처럼도 보인다.

재밌게도 자연은 눈이 오면서 시간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눈의 세기와 양에 따라 공간의 깊이도 생긴다. ‘낙산’은 이처럼 눈의 다양한 기능을 사진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표현하는 방법론으로 적용한 작업이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구성한 방식도 그 방법론의 연장선이다.

2005년 낙산을 촬영한 작업은 가로 프레임이고 2010년엔 세로 프레임을 사용했다. 전시장에서 해변의 라인 등 작품과 관객의 물리적인 접점을 통해 현장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로 프레임은 공간적인 힘이 있다. 전시장을 걸으면 세로 프레임의 창문을 보는 것처럼 풍경의 부분 부분을 보며 간접적으로 현장의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반면 가로 프레임은 작품에 몰입하는 힘이 더 강하고 시간의 변화도 더 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관람자들 중에는 사진의 내용상 파도가 더 거세고 눈이 오는데도 세로 프레임보다 가로 프레임의 사진이 더 조용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이미지와 이미지가 연결되어 전혀 다른 상황과 감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흥미롭다.

나는 예전부터 전시의 공간연출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한 공간 안에서 이미지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처럼 이미지도 저마다 고유의 입장 혹은 발언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처럼 이미지 역시 서로 상극인 관계가 있다. 또 서로 좋아하며 잘 어울리기도 한다. 이처럼 전시에 초대된 모든 이미지들이 서로 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전시가 산다. 이 점이 전시의 핵심인데 쉽게 간과되곤 해 아쉽다.

 

이미지 편집이 중요한 사진책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것 같다. 지금까지 낸 사진책만 해도 8권이 넘는다.

최근 출간한 ‘낙산’ 작품집 역시 역순으로 편집해 또 다른 연출을 시도하는 등 시간과 공간을 이용한 편집에 신경을 썼다. 다른 장르의 예술과 달리 사진만이 가진 특권 중 하나가 바로 사진책이다. 사진책을 통해 전시장에서와는 또 다른 시공간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단순한 자료용 도록이 아닌 사진책을 만들 경우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진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론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첫 작품집인 ‘부문/Boo Moon’은 2년에 걸쳐 준비해 1999년에 미국의 사진전문 출판사 나즈라엘리 프레스에서 출판했다. 그때의 인연이 지난 십여년 동안 이어져 ‘Stargazing at Sokcho’ 등의 사진집을 차례로 냈다. ‘부문/Boo Moon’에 글을 써준 일본평론가 쿠라이시 시노 등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집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한 큐레이터가 2007년 나비장 출판사에서 발간한 ‘낙산’ 작업을 보고 그중 한 점을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의 기획전인 ‘물의 전경’전에 초대해 쿠르베의 그림과 한 방에 걸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이뤄졌다. 하지만 마치 경주마처럼 비로소 코스에 들어선 느낌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궁금한 점도 많이 생겼고, 앞으로 감당하고 치러야 할 험난한 여정도 눈에 보인다. 10월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맞춰 일본에서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신년이 되니 전시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작가는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똥개가 된다.(웃음) 뭘 하든 야성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낙산’ 작업은 날씨가 도와주는 한 계속될 것이고, ‘산수’ 작업 역시 ‘오대산’이라는 별도의 작업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진행될 것이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세상을 어떻게 하면 나답게 바라볼지 기대된다.

 

 ê¸€|김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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