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 KOREA 2008년 6월호

권부문은 거기에 있었다

사진가 권부문(영어 이름은 boo moon)이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현대사진에 관한 당신의 감식안은 좀더 개발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 된다. 다만 기쁜 일이다. 그의 사진을 마주하는 당황스런 쾌락이 온전히 당신의 것이니까. 권부문은 투명인간도 아니고 은둔거사도 아니지만 풍문으로 회자되기로는 그에 못지 않았다. 일체의 소란을 도려낸 존재감으로 다만 어떤 이미지를 열망하고 어떤 풍경을 대면하고 어떤 희열로 벅차하는 사진가, 앞에 서면 둔기로 가한 충격처럼 멍해지는 풍경,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최소한의 뉘앙스만을 남긴 채 덩그러니 펼쳐놓은 힘센 사진. 박여숙 갤러리에서의 전시 를 앞둔 그는 말끝을 흐리는 법 없이 차분했다. 네모진 뿔테 안경 속의 눈은 맑았다. 얼음 속처럼.  에디터/ 장우철  

1975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첫 전시를 생각하면 어떤가, 당신은 그때 스무 살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을 안 하기 위해서 한 전시였다. 더이상 사진이라는 걸 안 하겠다는 선언, 청산 그런 거였다. 학생이 바깥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용납이 안되던 시절이라서 학교에선 건방진 놈이라고 난리가 났고, 여기저기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초점도 안 맞고 온통 시커멓고 구조도 없고 그런 사진 1백여 점을 걸었는데, 사진계 원로라며 전시장에 와서는 지팡이로 사진을 두들겨 패고, ‘이놈 저놈’ 거리고…. 많이 싸웠다. 사진을 끝내겠다고 한 전시가 새로운 투쟁의 길을 준 셈이 되었다. 

그 사진들이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반증 아닐까? 

당시 한국 사진이란 거지 찍고, 지나가는 여자의 스카프라든가, 빨간 우산 들고 고목나무 옆에서 구도 잡아서 찍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건 뭐 온통 시커멓고, 지금 봐도 뭐랄까, 래디칼radical하다. 정보부에서 전시장에 와서 ‘너는 왜 이렇게 사진이 검냐’ 그러던 때다. 미전에 출품할 때 빨간색을 2/3 이상이면 접수자체가 안되던 시절이다. 내 사진이 ‘검열의 대상’이었다는 식의 얘기는 아니다. 시대비판적인 작업도 아니었다. 그 시대를 사는 내 심경이었을 뿐이다. 

당신을 압축하는 말 중에 ‘풍경’을 빼놓을수 없다. ‘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입대 7개월 전에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축약반이 나왔다. 그걸 읽으면서, 내가 군대에 간다는 문제, 돌아왔을 때 알 수 없는 내가 되어있는 문제, 땅을 디디고 사는 정체성 문제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내게 뭔가를 요구했다. 고향이 대구고 본이 안동 권가인데, 그때 하회마을 쪽이 댐을 경계로 한쪽은 수몰되고 한쪽은 남게 되는 상황이었다. 젊은 날의 생각의 랜드마크를 정하자는 생각에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입대 전날까지 찍고 밤에 택시 타고 대구집으로 와서 밤새 현상해서 필름 걸어놓고 새벽 네 시에 왜관으로 입소했다. 휴가 나와서 보니까 필름이 구운 오징어처럼 되어있었다. 그런 비장한 마음도 있었다.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카메라로 사회를 해석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었다. 제대하고 나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가진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굉장히 심취했었다. 그런 생각이 사물을 보는 내 태도를 세우는 어떤 갈등과 불화를 만들었다. 사람이 없는 도시 풍경을 찍는 작업을 오래 했다. 

어떤 원시성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사진 작업을 해왔다. 그야말로 황량한 황무지, 돌과 바위들, 구름, 밤하늘…. 어떤 풍경을 어떻게 찾아나서는 건가?

이런 얘기는 굉장히 좀…. 자칫 뭐 신비주의로 들릴까봐 조심하는데, 사람은 자기가 인식하고 살아간 만큼 세상을 본다. 나는 그 문제에 굉장히 치열했다. 사소한 사물이라도 관계를 맺으려면 이해하는 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하면 이미지적인 꿈이 생긴다. 뭔가를 만나고 싶다거나 뭔가를 봐야 할 것 같다는 꿈을 꾸다 보면 결국 만난다. 너무나 절묘하게. 이가 아플 때라야 치과 간판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갈망하는 이미지를 만나는 과정 속에 여행이 끼어드는 거다. 각자 마음 속에 어떤 파장을 갖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자기 앞의 풍경은 다르게 이해된다.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온 만큼 ‘봐내지’ 않겠나.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다기보다는 그 풍경에 관한 이해력을 ‘생활해내는’ 거다. 그랬을 때 풍경의 에너지가 떨림판처럼 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작업을 했다기보다 내게 일어난 일 같다. 

그래서일까? 당신의 사진 속 풍경은 차갑다. ‘내가 거기에 있었다’라는 최후의 한 마디만 남겨놓은 듯하다.

내 경험만큼, 내가 그 앞에 섰던 상황만큼, 내가 이해했던 만큼만 이미지에 드러나도록 하고 싶다. 내 사진엔 사람이 없다. 사람의 자리는 이미지 앞이다. 그들이 보는 이미지에 무슨 얘기를 덧붙이고 싶지 않다. 내겐 그런 권리가 없다.   적확한 예는 아니지만, 조선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작은 사람들이 그 풍경의 정서를 방해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내 사진은 친절하지 않다. 어떤 이미지가 온전히 자기 몫이 되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당황한다는 건 그야말로 바로 그 전의 내가 아닌, 뭔가 변화가 일어난 내가 되었다는 얘긴데, 그럼 작가로서 성공한 거 아닌가? 

그렇다면 사진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당신의 의도에 합당한 것이겠다.

고민이 많다. 가능한 한 육박해오는 이미지가 되길 원한다. 그런데 조금만 커져도 작업 시스템이 다 변한다. 일단 방 문을 뜯어야 한다. 안 들어 가니까. 트럭도 1톤에서 5톤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 걸 감수하더라도 커졌으면 좋겠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느끼는 그런 친절이라면 베풀고 싶다.

이번 전시에서 즉각적인 시선을 끄는 푸른 얼음 사진 말인데, 처음 보고는 이게 사진 맞나 싶었다. 천박한 질문을 하나 하겠다.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건가?

렌즈보호용 외엔 필터를 쓰지 않는다. 혹시 색온도 조작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그걸 조절하면 흰 얼음들이 다 자기 색을 버리게 된다. 조작 없다. 보기에 진짜 그렇게 생겼다. 사진보다 더 화려하다. 지리학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북쪽 얼음의 남쪽 면에만 저런 푸른색이 보인다. 여름철에 얼음이 녹고 떨어져 나가기를 아주 오랜 시간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풍경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밑의 파란색부터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까지, 마치 당신이 열망했던 어떤 꿈이 겹쳐지고 또 겹쳐진 것 같은 뉘앙스다. 풍경을 직면하고 촬영을 한다는 건 오랜 열망을 지우는 일인가?

어떤 의미에서 굉장한 해소다. 어마어마한 선물이고 작가의 가장 큰 특권일 수 있다. 다만 그 특권을 온전한 전달자 역할을 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운 걸 발견하려는 강박이 없다.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다.

온전한 전달에는 한 가지 과정이 더 있다. 어떤 사진을 취하고 어떤 사진을 버리냐는 문제.

그 순간은 참 어렵다. ‘꺾는’ 기분으로 어떤 걸 제외하기도 한다. 너무 좋지만 그게 선택되면 다른 것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다. 인간도 그렇지 않나? 내가 그룹 생활을 안 하는 이유도, 그룹에 들어가는 순간 불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진 역시 어떤 그룹에 속하진 않는다. 그 흔한 ‘한국적’이라는 뉘앙스조차 철저히 없다.

김대중 정부 때 자문역할을 한 기소르망이라는 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내 전시를 봤는데 한국적이라고 할 게 전혀 없어서 놀랐다고 했다. 한국에도 동시대 문화가 있다는 걸 알려야 휴대폰을 팔아도 파는 건데, 만날 한복 입고 북 치고 장구 치면 ‘저런 거 하던 애들이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지?’ 한다면서, 나를 모델 케이스로 한국의 동시대성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동시대인으로서의 인식을 발견하는 건 다시 내 과제겠지만.

칸느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와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를 거의 똑같이 생각하는 마당에, 당신의 ‘동시대성’은 어려운 싸움이다.

금방 이익이 오는 길이 있지만 조심해야 한다. 지식인으로서는 굉장히 금기시해야 된다. 우리는 내셔널리스트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무섭다. 집단 히스테리다. 작가라는 사람들조차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 연설에서 “일본보다 우리가 낫게 해야 됩니다 아자! 파이팅!” 대체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하나? 그런 거 보면서 아이고 나도 조심해야겠구나 큰일 나겠구나 그런다.

당신은 ‘젊은’ 작가인가?

쉰 셋인가, 넷인가?

‘젊은’이라는 말엔 작은 따옴표가 쳐있다.

호기심을 갖지 못하고 고답적인 자기 입장에서 한치도 나가지 않는다면, 요즘 말로는 보수꼴통이라고 하던데…. 작가는 현재형이어야 한다. 작업 자체가 현재형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제조업자일 뿐이다. 올해 부쩍 흰 머리가 많이 나긴 한다. 

‘젊은’작가에게 야심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마에 욕심을 딱 붙이고 다니면 위험하다. 사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예전엔 뭔가 욕심이 떠오르는 대로 다 없애버렸는데, 그러다 보니 무기력해지기도 해서 조금은 필요한 욕망을 축적하고 있다. 전략적인 건 너무 싫어서 못하고, 조급하게 가지만 말자고 생각한다.

첫 번째 관객으로서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드나?

속초 지하 작업실에서 혼자 괴성을 지르고 돌아다닐 때가 많다.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정도의 괴성을 혼자서 지른다. 어떻게 이게 나한테 오고야 마는가 같은 필연도 느낀다. 그럴 때 내 자신에게 고맙다.

당신이 괴성을 지를 새로운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계획도 많고, 진행중인 것도 많고, 해논 거 펼쳐놓을 것도 많다.

부자다.

부자라기보다 부채다. 내 작업 앞에 서는 분들이 느끼는 만족도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결제자가 아니라 전달자니까.

33년 전에 사진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처럼 했던 첫 전시로부터, 지금 당신은 어떻게 달라져있나?

카메라를 부순 적도 많았다. 나를 고양시킬 다른 재료가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사진이 매개체가 아니었다면, 내가 설사 철학자가 되었던들 이런 깨달음이나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는 사진에게 은혜를 갚는 역할이다. 사진 그만두겠다고 카메라 집어던진 죄값을 치르는 건지도 모른다. 가는 시간을 묵묵히 잘 받아들이려고 한다. 술은 끊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