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부문전 서문, 인공갤러리, 1994

그냥 찍어보기

권부문의 사진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작품이 이런가 하고 의아심이 갈 정도로 별반 특성이 없어 보인다. 이름할 만한 어떤 의미 있는 대상을 촬영한 것도 아니며 그 흔한 멋진 풍경을 촬영한 사진도 못 된다. 게다가 특별한 사진적 기술이 동원된 것 같지도 않다. 카메라 기본 매뉴얼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기본적인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따라 솔직하게 촬영한다. 가히 익명적이라 할 만큼 그는 카메라 기본 메커니즘에 따라 촬영하고 특별한 성격이 없는 것들을 무미건조한 표정 없는 모습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권부문의 사진은 규범적이다. 그의 사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찍었냐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어떻게’와는 무관한 ‘그냥 찍음’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사진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찍어 보는 것이 그의 작업의 전부라 하겠는데, 그것은 사진적 사실(Fact) 혹은 진상(Reality)에 대한 흥미라고 본다. 하늘을 찍은 사진을 두고 얘기하자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이 아니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 찍었다는 기술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이 하늘을 찍은 사진이라는 그 사실이라는 말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그 사실, 즉 사진을 얻기 위함일 것이며 마땅히 사진다운 사진을 얻기 위해 사진을 찍을 것이다. 사진다운 사진이라는 사진적 규범에서 벗어난 사진을 권부문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사진을 찍을 대상, 피사체를 일부러 찾아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무엇을 찍을까 하는 문제는 그에게 무의미하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사진을 찍고 살지만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 못 된다. 특히 특별한 촬영 목적이 있는 일이나 성격 있는 대상을 촬영하는 일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다. 그는 그저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면 좋을성 싶을 정도의 것을 주로 촬영한다. 그런 대상에 적정 노출에 셔터를 누른다. 그는 그 정도로 충분해 한다.

지난 해 권부문은 타이완, 인도네시아, 유럽, 호주, 등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 본래 여행 목적은 사진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니었지만 여행 중 사진 작업을 좀 했다. 작업이라지만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몇 장면의 항공 사진과 열차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항공 사진은 비행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나 가볍게 찍어 본 사진 같다. 누구나 비행 중 잠에서 깨어나 창 밖을 내다 보는 일이 있는 것처럼 사진 촬영을 한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장면은 비행기 여행 중이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광경에 불과하다. 같은 식으로 열차에서 찍어 본 하늘과 땅이 보이는 수평선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을 찍은 시간은 길지 않다. 한 자리에서 잠시 동안 창 밖을 내대보고 수십 컷의 셔터를 누른 것이다. 지난 해 여행 중 특별한 의미 없이 찍어 본 사진의 일부가 여기 인공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은 보통 사람은 할 수도 없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특별한 그 무엇인 것으로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기이한 것이 고상한 예술 인냥 그런 괴상한 것들을 애써 만들어내려는 작가들도 있다. 창조적이라는 미명 아래 그런 일이 횡행되고 있는 게 오늘의 우리 예술계의 대체적 현상인 지도 모른다. 사진가들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들은 특별한 대상을 찾아 미적 혹은 사회적인 대상을 부각시키거나 그것을 변조시키기 위해 사진 메커니즘을 개발, 조작 하기도 한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잡동사니를 얼버무린 작업을 내놓기도 한다. 무언가를 적당히 얼버무리면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는 냥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일 정도이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그게 어째서 예술 작품이 되는지, 반문하지 않는다. 얄궂게 만들어진 결과에만 관심을 쏟아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원인에는 자연 무관심해져 있다.

권부문의 사진 작업의 의미는 찍혀진 사진, 작업의 결과물로서의 사진에 있지 않다. 사진을 찍는 행위 이전에 그 자신의 사진에 대한 태도에 있다. 앞서 그의 사진을 두고 별 의미 없이 그냥 찍어 본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 까닭에 어쩌면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그의 작업 의도에 의심이 갈 지도 모른다. 실상 그의 작업 의도는 거창하지 않다. “찍어 본”이란 그 어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은 목적지향적인 의도가 있는 사진 찍기라고 볼 수 없다. 어떤 목적에 의한 찍기가 아니라 찍기 자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찍어 본’이라고 했을 때 ‘본’의; 본디 말은 조동사 ‘보다’이며 그것은 동사의 의미 아래에서 쓰이어 ‘시험 삼아 … 해 보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진을 ‘찍어 보다’라 한다면 여기서 ‘보다’는 조동사로서 찍다 (taking)라는 동사를 돕는 구실을 한다. 권부문의 일은 이처럼 ‘보다’의 입장 정도에 있다고 본다. 사진을 찍을 때 그는 ‘찍다’라는 동사의 조동사적 역할 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고 그는 그것을 돕는 일을 한다는 말일 지 모른다. 조동사는 제 홀로서는 어떠한 구실도 못하며 본 동사를 도움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의 구실을 한다. 사진을 찍어 보다 (try taking a picture)에서 보다(try)는 사진 (a picture)을 돕는 게 아니라 찍다 (taking)을 돕는다는 것도 말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권부문은 사진을 찍는 그 일에 있어 그만큼 너그럽다. 사진을 찍어 보는 일 이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 카메라를 돕는 일 이외에는 그가 해야 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작업이라 여긴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에 권부문의 사진 작업의 의미는 그 자신이 사진을 이해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냥 ‘찍어 본다’는 작업 행위에서 그 태도의 실마리를 찾아 그것에 의미를 서술해 보려고 했다. 다시 말해 사진 찍기가 목적지향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open ended’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것을 ‘열림의 철학’의 문제로 이해하여 보려고 했다. 그러니 아직 이 글은 관념적 전제에 그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필자의 능력 부족이다. 다음기회로 미루어 놓을 수 밖에 없다. ‘Open ended’한 그의 작가적 처신, 그냥 찍어보기의 의미의 이해 아래서 그의 사진을 다시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횡현욱 (인공갤러리 디렉터)